대만은 그야말로 완벽한 멜팅팟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치 동아시아의 흥미로운 점을 모아서 만든 나라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중화권 특유의 호쾌함과 동시에 일본다운 섬세함도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공간은 마치 한국의 핫플레이스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타이베이, 가오슝, 타이난 등 대만의 여러 도시는 명확한 아이덴티티가 있었고, 각기 다른 분위기를 드러냈다. 매력적인 멜팅팟 대만의 도시와 공간, 사인을 한 번 둘러봤다.
▲ 벽화는 가오슝 보얼예술특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토스폿이라 할 수 있다. 안 찍은 사람은 있어서도 한 컷만 찍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특히 가장 상징적인 벽화는 마치 기차역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데, 대만과 가오슝, 그리고 보얼예술특구를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한 컷에 담을 수 있어 인상적이다.
아름답지만, 곡절을 겪은 섬, Formosa의 시작점 15세기 중반 대만을 발견한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은 아름다운 섬이라는 의미의 ‘일랴 포르모사(llha Formosa)’라고 표현했다. 이후 서양인은 대만을 포모사(Formosa)라고 부르게 됐다. 물론 지금 대만을 포모사라 부르는 사람은 없지만, 여전히 가오슝에는 그런 흔적이 남아있다. 대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역으로 유명한 가오슝의 미려도 역은 영문으로 ‘Formosa Boulevard’라고 표기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오슝은 Formosa의 시작점이자 여전히 그 정취를 담고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가오슝은 17세기에 다가우(打狗)라고 불리는 마을이었다. 다가우라는 이름은 타이완 원주민의 언어로 ‘대나무 숲’을 의미하는 마카타오에서 유래했다. 17세기 초에 네덜란드인들이 점령하려 했지만, 지역 원주민에게 패하며 추방됐다. 네덜란드인을 몰아낸 정씨왕국의 건립자인 정성공과 그의 아들 정경은 마을의 이름을 만년주(萬年洲)로 개칭했지만, 17세기 말 중국 본토에서 이주민이 유입되면서 다가우로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대만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다카오(高雄たかお)로 불리게 됐다. 가오슝은 일본 점령기(1895~1945)에 본격적으로 경제적, 전략적으로 중요해졌다. 일본은 대만 남부의 원료와 식량을 본국으로 보낼 좋은 항구를 찾고 있었고, 가오슝이 최적의 입지였다. 그 결과 가오슝은 남북을 잇는 철도의 남쪽 종점이 되었고, 여러 차례 항구를 확장하며 발전했다. 가오슝이라는 지명은 다카오를 표준 중국어 발음으로 읽은 것으로, 1978년 대만 정부가 직할시 승격을 승인하며 수도 타이베이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하게 됐다. 결국 포모사, 다가우, 만년주, 다카우, 가오슝으로 지명이 변하는 과정은 아름답지만, 곡절을 겪은 대만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15세기 중반 대만을 발견한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은 아름다운 섬이라는 의미의 ‘일랴 포르모사(llha Formosa)’라고 표현했다. 이후 서양인은 대만을 포모사라고 부르게 됐다. 물론 지금 대만을 포모사라 부르는 사람은 없지만, 여전히 가오슝에는 그런 흔적이 남아있다. 그리고 보얼예술특구에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포모사를 해석해 둔 포토스폿이 있다.
예술을 사랑하는 항구도시 가오슝의 거리를 걷다 보면 부산과 비슷한 느낌을 받곤 한다. 실제로 가오슝은 대만에서 수도 타이베이 다음으로 큰 제2의 도시고 부산과 결연을 맺은 자매도시다. 그래서 가오슝은 항구와 바다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든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가오슝에는 여러 항구가 있다. 이 중에는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항구도 속해있어 왜 가오슝이 항구의 도시인지 알게 한다. 치친섬을 앞으로 둔 보얼예술특구는 가오슝이 왜 예술을 사랑하는 항구도시인지 알게 하는 곳이다. 보얼은 대만어로 제2 항구라는 의미인데, 실제로 항구의 창고로 쓰이던 공간을 활용해 예술인들이 모여 창작활동을 하며 형성된 곳이다. 버려진 항구의 창고를 활용해 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갤러리, 공연장, 카페 등 인상적인 공간이 항구를 중심으로 길게 퍼져있어 볼거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보얼예술특구를 끼고 순환하는 트램 LRT는 교통수단을 넘어서 공간의 풍경을 완성하는 오브제 같아서 인상적이다. 녹색 잔디 위를 유영하듯 트램이 지나가면 마치 보얼예술특구라는 공간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 그 밖에도 웨이우잉 벽화마을과 국가예술문화센터는 가오슝이 왜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인지 알 수 있는 공간이다.
▲ 보얼예술특구를 끼고 순환하는 트램 LRT는 교통수단을 넘어서 공간의 풍경을 완성하는 오브제 같아서 인상적이다. 녹색 잔디 위를 유영하듯 트램이 지나가면 마치 보얼예술특구라는 공간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